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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8. 20:56 문화/책
 

로마인 이야기 1

작가 시오노 나나미

출판 한길사

발매199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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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1장 로마의 탄생

 

유민의 전설

기원전 8세기의 이탈리아

에투루리아인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건국의 왕 로물루스

제2대 왕 누마

제3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제4대 왕 안쿠스 마르티우스

최초로 선거운동을 한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제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마지막 왕 '거만한 타르키니우스'

 

제2장 로마 공화정

 

공화국으로 이행한 로마

그리스에 시찰단 파견

그리스 문명

아테네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

패권주의 아테네

페리클레스 시대

그리스를 알고 난 뒤

로마의 귀족

켈트족의 침입

그리스의 쇠퇴

일어서는 로마

정치 개혁

로마의 정치체제

'정치 건축으 걸작'

'로마연합'

로마의 길

시민권

산악 민족 삼니움족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와 로마의 대결

병법의 천재 피로스

 

 

로마는 순조로왔던 시기에도 일보 전진과 반보 후퇴를 거듭했고 

잘못하면 10보나 20보씩 후퇴하여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데 수 십년이 걸리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로마가 번성한 요인은 대부분 이 500년 동안 싹이 터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립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것과 비슷하다.

 

방어에는 완벽하지만 발전을 저해받기 쉬운 언덕을 좋아한 에트루리아인.

방어가 불완전한 곳에 도시를 건설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밖을 향해 발전하게된 로마인.

통상에는 편리하지만 자칫하면 적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공과대학의 도시공학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우선 철학이나 역사같은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다. 

도시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신에게 자기네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요구하지 않은 대신 무엇을 요구했을까? 

그것은 바로 수호신 역할이다.

수도 로마를 지키는 것은 최고신 유피테르를 비롯한 신들이고, 

싸움터에서는 군신 마르스야누스 신이 그들을 지켜주고

농업은 케레스 여신이, 

포도주 제조는 바쿠스이, 

경제력 향상은 메르쿠리우스이, 

병이 나면 아이스쿨라피우스이 지켜주고, 

행복한 결혼과 여자를 지켜주는 것은 유노 여신이었다.

로마인은 이런 수많은 신들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옆에서 돕는 것이야말로 수호신이 마땅히 지녀야 할 모습.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단순히 믿는신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신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도 차이가 있다. 

남의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그것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원칙을 바로 잡는 역할을

종교에 맡긴 유대인.

철학에 맡긴 그리스인.

법률에 맡긴 로마인.

이것만 보아도 세 민족의 특징이 떠오를 정도이다.

 

 

기원전 6세기의 로마에서는 

많은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많은 권리 갖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시민의 의무, 즉 직접세인 군역을 면제받는 것은 

16세 미만인 미성년 남자와 

이미 오랫동안 의무를 수행한 60세 이상의 고령자

여자와 노예, 

재산이라고는 자식밖에 없는 사람을 듯하는 '프롤레타리', 즉 무산자뿐 이었다. 

여자는 아이도 키우고 남편을 섬김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여자라도 자녀가 없는 미망인은 그런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기병이 타는 말의 유지비로 매년 200아세를 낼 의무가 있었다.

 

 

개혁이란 이렇게 서운 것이다. 

실패하면 그 민족에 치명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공해도 그 민족의 성격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그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결정지어 버리기 때문이다.

 

 

두 명의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을 평민으로 하자고 요구한 예가 보여주듯이 지금까지 평민들이 원하고 있었던 것은 국가 요직을 귀족과 평민이 분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리키니우스법을 입안한 평민출신의 리키니우스와 그 생각을 법제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진 귀족들은 계급별 분배가 아니라  전면개방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관직을 귀족과 평민에게 분배한다면 우선 기회균등에 어긋난다. 차별을 폐지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조치가 거꾸로 차별을 정착시키는 결과가 된다. 게다가 이런 것은 일단 양분되면 양분된 상태로 고착되어 버린다. 두 파로 나뉜 이익대표 항상 대립하면서 서로를 적대시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국가 전체의 힘을 유용하게 활용해야한다는 정치개혁의 명분에도 걸맞지 않다. 또한 그것은 투쟁의 불씨를 영원히 몸 속에 끌어 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원전 367년 당시의 로마는 전면개방을 택했다. 국가요직을 전면개방하면 완전한 자유경쟁이 된다. 선거결과 집정관은 둘 다 귀족이 될 수도 있고 두 자리를 모두 평민이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이니까 어느 쪽도 불평할 수가 없다. 이 선택의 가장 큰 이점은 이익대표제를 해소해 버린 데 있다.

출처 ; <로마인이야기1> /시오노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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